▌ 나의 새중앙 교회 이야기
남성 4셀장(운정) : 김정길
얼마 전 교회 홈페이지를 보다 사역자들이 새중앙 교회에서의 신앙생활과 비전을 나눈 “나의 새중
앙 교회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 나도 지나온 신앙여정을 되돌아보며 나의 새중앙 교회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물론 그때 까지는 셀장들도 이 글을 발표해야 하는 것
을 모르고 있던 중이었으나, 이렇게 내 신앙의 전부인 “나의 새중앙 교회 이야기”를 통해 유익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어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사회조직 속의 직장인으로서 져야 할 삶의
무게를 무겁게 느끼며, 내가족의 행복과 내 자신의 성공이 인생의 목표인양 세상의 헛된 것에 모든
수고를 하고,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며 살아가던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며
살려고 노력하였고 나름 선량한 사람이라 자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하
여는 매우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종교는 과거 위정자들의 통치수단으로 이용되었고 지금은, 의지력이 약한 사람들이 매달리는 허구의 안식처요, 도피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종교는 속박이라는 고정관념 속에 빠져 거기에 예속되기를 거부하며 35년을 살아 왔습니다.
< 새중앙 교회와의 만남>
2001년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큰아이 ‘이수’가 서울 미아동에 있다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트레이너로 일하던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가르치던 고객에게 전도를 받고 본인은 교회에
가기 싫어, 대신 큰 아이를 보냈던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집은 의정부에 있었고 교회는 서울 미아동에 있어 어린아이가 먼 거리를 다니는 것이 저로서는 탐탁지 않았으나 아이가 원하는 일이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때는 토요일 오후만 되면 교회에서 걸려오는 주일예배초청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아내와 서로 미루던 생각이 납니다. 아이가 교회와 끈이 연결되어 있자 저희 부부는 잠재적인 전도대상자로 낙점되어 지속적인 예배초청과 수시로 교회등록을 권유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수유성전 입당예배와 총동원 전도주일 같은 교회행사 때는 마지못해 아이 손에 이끌리어 교회로 향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 교회에서 온 버스를 타고 교회로 가는 길은 몹시 지루했습니다.
의정부 민락동, 용현동을 거쳐 서울 도봉산, 우이동 고개를 돌아 수유동 성전에 이르는 낮선 여정과 지루했던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은 일요일 달콤한 늦잠과 휴일의 편안한 휴식을 포기당한 억울함이 겹쳐 교회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곤 했습니다.
교회는 시장 통 안에 위치하고 있어 버스는 진입이 어려워 수정탕 이라는 목욕탕건물 앞에서 내려
걸어서 교회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의미 없는 몇 번의 출석을 통해 저도 모르게 교회에 등
록 되었다 재적되고, 다시 재등록을 반복하여 지금도 교회에 저의 정확한 등록일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던 저에게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따듯한 손길이 예비 되어 있었습니다. 아내가 둘째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을 앞둔 어느 날 아내와 함께 교회를 찾 았고 목양실에서 담임목사님께 난생 처음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예배당 지하에 위치한 목양실에는 많은 책들과 인자한 표정의 풍채 좋으신 목사님 계셨고 그것이 담임목사님과의 첫 번째 만남 이었습니다. 그 후 둘째아이를 출산한 아내는 본격적으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교회에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돌도 안 지난 갓난아이를 추운겨울에 등에 업고 서울까지 다니는 아내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저는 아내의 운전기사 역할로 새중앙 교회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에 왔어도 예배에 참석치 않고 차 안에 있거나 예배에 참석해도 맨 뒷자리나 기둥 뒤에 숨어 구경꾼처럼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배에 참석하는 횟수가 더 해지던 2002년 12월 24일 성탄전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당시 의정부 구역식구들과 함께 천사를 우리가정에 보내 주셨습니다. 성탄전야, 그날도 우리가족은 세상 사람들처럼 크리스마스이브 기분을 내기 위해 분위기 좋은 식당을 찾아 나섰는데 그 식당입구까지 우리를 찾아와 케잌과 목도리를 선물하며 길거리에서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며 축복 송을 불러주던 그 얼굴들, 그 눈빛들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으며, 그들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에 처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 예수님과의 만남 >
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다음날, 성탄예배 때 목사님의 입을 통하여
전해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거역할 수 없는 에너지가 담겨 있음을 느끼며 그 말씀에 이끌리어
첫 감격적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새벽예배를 작정하고 일주일에 열 번 있는 전 예배를
드리며 세상이 알 수 없는 참 기쁨을 알게 됐고, “이 험한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영원히 나와 함께 하겠다” 약속하신 그 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2003년 4월 27일 교회창립 3주년
감사예배 때 감격의 서리집사 임명을 받았습니다. 함께한 신임 직분자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물들은 강대상 자주색 카펫위에 모두 무릎 꿇고 통성으로 부르짖으며 기도 하였고, 온 성도들은
거룩한 손을 들어 저희를 축복하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도 저희를 일일이 안수하여 예수님의 핏 값으로 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새로운 일군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같은 해 전교인
여름수련회 기간인 8월 1일 하늘비전교회 설악 수양관에서 담임목사님께 침례를 받고 말씀으로
씻겨 진 예수님의 영적신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2003년 성탄절 특별부흥회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구원의 확증을 갖게 하셨습니다. 강사로 초청 된 장경동 목사님께서는 부흥집회 마지막 날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에게
안수기도를 하셨습니다. 저는 헌금위원으로 맨 앞자리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다 줄이 너무 길어,
기다리는 동안 “기도나 해야겠다.” 생각하고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안수기도 줄이 짧아지자 저도 자리에서 일어나 줄을 서고 목사님께 안수를 받기 위해 다가서는 순간, 목사님의 손이 제 머리에 닿기도 전에 알 수 없는 힘에 압도되어, 그 자리에서 강대상 위에 꼬꾸라지고 의식은 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는 성령님의 터치하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강대상 천정에 매달린 조명 빛
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니, 잠시 후 내가 그동안 예수님을 부인하며 지었던 수많은 죄악들과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심을 파노라마 영상처럼 내 눈에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십자가 앞에 내가 말할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나는 아무것도 주장 할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구원해 주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여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저는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한 두 가지의 만남인 “예수님” 과 “교회”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만나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 교회”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한 몸인 교회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내가 보이고 다른 지체인 성도들과 내가 한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통하여 자라나고 더욱 성숙되어지길 소망합니다. 교회를 만나 후 교회 안에서 조심조심 사역하게 되고 항상 긴장하며 매사를 삼가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면 육적으로는 편하지 않습니다. 내게 아직은 어색한 예복을 입은 듯 불편하며 교회안의 물건 하나하나도 모두 성물이기에 조심스럽고, 언짢은 일이 있어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큰 목소리를 낼 수 도 없었으며,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담임 목사님 또한 영적 아버지로서의 권위 앞에 항상 어려운 분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함을 누리는 은혜가 있기에 평안했습니다. 그래서 더 멋진
교회로 지어가는 내 교회, 새중앙 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 삶의 변화와 가족의 핍박 >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와 주인으로 영접하고 예수님과의 만남이 있은 후 하나님이 계신 제 삶은 이
제 살 맛 나는 삶으로 변화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바라보며 사는 지금의 제 삶이 이전의 삶보다 훨씬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마음속의 짐을 내려놓았기에 믿음생활 이후 삶 자체를 축복으로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불행은 불행을 낳고 축복은 축복을 낳는다는 진리를 깨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 삶의 유일한 낙으로 생각했던 술, 담배, 친구들과의 모임도 끊고 예수님의 말씀만을 바라보며 살기 시작하자 가족과 주위의 핍박이 시작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형님께 아버지 제사와 명절 때 차례를 더 이상 지낼 수 없음을 선포하자 가족들의 반응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극단적 이었습니다.
저는 2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나 중학교 때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는 아니셨지만 때마다 절에 다니시며 자식들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특히 아들이 없는 형을 대신해 우리가정에 늦은 아들을 얻게 된 축복이 어머니
의 불공기도의 결과로 여기시는 탓에 저희부부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이 더 크셨던지 가족의 연을 끊자고 하시며 명절 다음날 찾아간 저희부부를 문전 박대에 소금까지 뿌리며 노여워 하셨습니다.
이렇게 노여워하시는 어머니와 형님 앞에 우리부부 또한 강팍해 지고 이것도 주님의 뜻이라는 그릇
된 위로를 얻고자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욱더 낮은 모습으로 어머니와 형님부부를 섬기며 다가갈 때 회복하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족의 연을 끊자하시며 노여워하시던 어머니도 “자식들이 교회에 나가는데 당신이 절에 갈 수 없다” 하시며 절 출
입을 끊으시고 형님이 교회에 나갈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 성장과 성숙을 위한 사랑의 훈련 >
제가 새중앙 교회에서 처음 시작한 훈련의 과정은 교회학교 유치부 교사였었습니다. 처음에는 심적
부담이 적은 성가대를 해볼까, 생각했으나 담임목사님께서 영혼사역을 해보라 하시며 아무것도 모르던 저를 유치부 부장교사로 임명하셨습니다. 그 때는 ‘간사’라는 이름으로 부서마다 전문사역자가 계셔서 실은 제가 할 일이 크게 없었습니다. 5세에서 7세까지의 어린 아이들이지만 부모님 없이 혼자 교회에 오는 아이들이 많아 그들을 교회로 데려오고 예배 후 집으로 귀가 시키는 차량봉사와 간식을 담당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우연치 않게도 그 당시 제 자동차를 9인승으로 새로 교체한 시기
라 차량봉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유치부 교사를 하면서 때 묻지 않은 순전한 아이들의 믿음을 도리어 배울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담임목사님과 함께하는 직분자 토요일 큐티 모임을 통해 날마다 큐티와 성경통독의 거룩한 습관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토요일 오후에 직분자들이 목양실에 모여 담임목사님 주재 하에 한 주간 있었던 주일오전 오후예배, 수요, 금요저녁예배, 새벽예배 말씀과 개인 큐티 말씀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담임목사님과 여러 직분자들 앞이라 긴장도 되고 또 벼락치지로는 준비할 수 없는 내용이라 날마다 예배에 집중하며 날마다 큐티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토요일 또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오전 내내 보고서 작성으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랐기에 날마다 큐티를 통해 받은 말씀을 의지하며 살 수 있었고 매년 1독 이상의 성경통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훈련을 통해 신앙의 진보를 이루고 요동치지 않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기 위해 또 하나의 놀라운 역사를 준비 해 놓으셨습니다. 바로 제1기 리더십과 성령론 세미나였습니다. 주중에 예배가 없는 월, 화, 목요일 저녁 주 3회 교회에 모여 담임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기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10월부터 12월 초까지 2개월간 진행된 세미나는 매 강의마다 넘치는 은혜와 놀라운 감동으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의정부에서 출발하여 직장이 위치한 서울의 끝자락 고덕동과 수유동을 매일 두 번씩 오가는 발걸음이 그리도 행복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말씀 듣고 기도 후 집으로 돌아갈 때면 한 시간 남짓 경과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은혜와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항상 상기되어 있는 저의 얼굴을 본 아내는 무언가 범상치 않은 세미나임을 직관한 듯 곧바로 제2기 리더십과 성령론 세미나에 등록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세미나 일정이 끝나갈 무렵인 어느 날, 참가했던 인원 모두가 합심하여 통성으로 기도할 때 천정에서 물방울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초겨울 날씨라 외부 온도는 낮고 교회 지하 끝 골방에 모여 얼마나 뜨겁게 부르짖었으면 기도의 입김이 수증기가 되어 천정에 맺히고 그것이 제 머리위에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성령님은 방언의 은사를 주셨고 그 이후로도 2번의 새로운 방언을 더해 주셨습니다. 당시 두 분의 부목사님을 포함하여 36명이 1기 멤버가 되었고 그 중 남자멤버 14중 3명의 청년을 제외한 11명 모두 부목사님과 장로님으로 세워졌으며 현재는 36명 중 11명이 새중앙 교회를 섬기며 함께 동역하고 있습니다. 그 후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제천, 울진 국내 단기선교를 통해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알게 하셨고 복음의 일꾼이 교회의 일꾼 될 수 있음을 깨달게 하셨습니다. 2007년에는 제1기 새벽정병을 통하여 새벽형 인간과 기도의 용사로 변화되게 하셨고, 하루의 첫 시간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며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훈련을 하게 하셨습니다.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날마다 새벽예배를 드림으로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름 휴가기간과 추석명절 기간에도, 자동차 고장 났을 때는 택시를 타고 달려갔고, 시간에 쫓겨 신호위반으로 교통범칙금을 물어 가면서도 마침내 아내와 함께 영광의 제1기 새벽정병 수료 패를 받는 기쁨을 허락하셨습니다.
2008년 5월 8년간의 수유동시대를 마감하고 파주 문발동에 새 성전을 건축하며, 아이리스 빌딩
임시 성전에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2008년 9월 파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5월간은 의정부에서 도시락을 준비하여 파주를 오가며 주일성수의 기쁨과 예배의 소중함을 알게 하셨습니다. 의정부에서
수유동 성전으로 7년을 출석하였기에 의정부에서 파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의정부에 있을 때도 늘 마음에 가지고 있던 소망은 성전 근처에서 예배하며 섬기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드디어 2008년 9월,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는 축복의 말씀에 힘입어, 태어나 40년을 넘게 살았고 어머니와 형님이 계신 고향 땅 의정부를 떠나 파주 운정 신도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4월 27일 파주 새 성전이 아름답게 준공되어 하나님께 봉헌 드리는 영광스러운 날,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주시며 장로로 안수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짧은 신앙의 연조 속에 보잘 것
없는 저를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강권하시는 것이, 저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주님의 큰 뜻이 있음을 믿고 그 선한 계획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오직 주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일만 감당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장로 안수 후,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단원으로, 교구 영혼을 담당하는 셀장, 팀장과 각종 봉사단체의 팀장 등의 직분으로 나 자신의 본성을 거슬려 예수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도록 교회봉사의 자리로 끝임 없이 저를 불러 주셨습니다.
성장과 성숙을 위한 사랑의 훈련을 통해 교회 일은 내 힘으로는 할 수 없기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며, 리더는 리더십보다 먼저 말씀과 교회와 담임목사님께 충성하며 따르는 팔로우십과 내 자신이 교회의 지체됨을 아는 멤버십이 우선되어야 하며 말씀대로 말과 행실에 본이 되고 은혜를 미치며 사랑과 온유와 겸손을 배워가야 함을 깨달게 하셨습니다. 이제 나 만을 위하고 높아지기 원했던 모습, 자존심은 있지만 자존감이 없는 모습과, 내 육신의 이름을 죽이고,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영적이름으로 바뀌어 지기 위해 원칙대로 훈련받기에 더욱 힘쓰겠습니다.
저의 영적이름은 ‘거룩’ 입니다. 하나님께서는“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말씀하셨지만 저는 한 번도 내 자신이 “거룩하다”거나 “거룩해져야겠다.”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도 깨끗하지 못한 제가 어찌 ‘거룩’을 꿈 꿀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기도시간에 목사님께서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 말씀하실 때면 저는 속으로 “하나님, 제 손은 너무 더럽혀져 있습니다. 깨끗하지도 더욱이 거룩하지 못 합니다” 라며 부끄러워 손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사는 삶이 거룩한 삶이며, 예수님의 완전한 1%의 믿음이 내 안에 들어오면 99%의 죄악 된 성품이 바뀌어 지고 깨끗해 질 수 있으며, 깨끗하게 나를 지켜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거룩해 질 수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더러워지기 쉬운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항상 머물러 있어야 은혜의 강수로 씻김 받고 예배와 큐티 교재 가운데 있어야 거룩해 질 수 있음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저를 택하시고 저를 ‘거룩’ 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다 칭하신 거룩한 두 손을 들고 나의 아버지께 기도하오니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내가 갔던 불순종과 거역의 길>
또 내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가 들은 바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디모데후서 2장 2절).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평가기준은 오직 “충성”인 것을
잘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거역했던 잘못을 다시 한 번 회개하고 돌이키기 원 합니다.
저의 첫 번째 불순종의 사건은 2003년 남성 찬양단으로 불러 주셨을 때 키 큰 집사 옆에서 키
작은 제가 함께 찬양하기 싫다는 이유로 담임목사님의 권유를 거절 했건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
하기 보다는 사람만을 의식했기에 사람들 앞에 내가 어떻게 보여 지는가에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불순종을 하나님께서는 모두 용서하시고 몇 년 후 일주일 열 번의 전 예배를
찬양으로 섬기는 찬양단장으로 세워주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제1기 리더십과 성령론 세미나를 마치고 강릉으로 1박2일 수료M.T를 다녀온 후 담임목사님께서는 남자집사님 5명을 목양실로 부르시어 저를 포함한 5명 모두에게 장로안수를 권유하셨고, 저는 또 다시 목사님의 말씀을 거절 하였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서리집사 임명을 받은 지 채 2년도 안 되었고, 장로
될 믿음이나 자격과 조건이 너무 부족하다는 이유였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건축헌금 등 돈에 대한 걱정이 앞섰고, 물질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려했던 죄악이 내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장로안수 권유를 거절한 불순종 앞에, 계속되는 강단의 말씀에 대한 찔림으로 저는 어느 날 교회 홈페이지에 불순종에 대한 회개의 글을 올렸고 담임목사님께서는 답 글을 통해 모든 것을 용서 하시고 도리어 축복의 말씀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세 번째 사건은 새 성전 입당 후 있은 심령부흥집회 때의 일입니다. 강남에서 유명한 부흥사이며
기도원 원장님이신 여성 목사님을 초빙하여 토요일, 주일저녁과 월요일 주 3회씩 3개월에 걸쳐
계획 된 부흥회는 강사목사님의 건강상의 이유로 채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중단 되었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부흥회를 시작하기도 전 인터넷에 떠도는 강사목사님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성도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말씀을 빙자해 거액의 건축헌금을 강요하며 무리한 일정 속에 강압적이고 선동적인 방법으로 부흥회 참석을 강요한다는 불만의 소리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7명의 장로들 중에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불만을 제기한 분들이 있었고 금요예배 후 헌금계수를 마친 뒤 담임목사님과의 말씀은혜를 나누고 귀가하는 길에 한 식당에 모여 새벽 동 틀 때까지 교회와 담임목사님을 성토했던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전과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라” 말씀하셨건만 저는 ‘내 생각’에 사로잡혀 교회의 결점만을 찾아내고 확대시키려는 ‘비판적인 성향’과 내 자신의 의견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내려고 노력하는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불 충성을 넘어 거역과 반역의 길에 서고야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 자리에 함께 했던 4명의 장로와 많은 성도들이 스스로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일 이후 저는 담임목사님을 찾아가 저의 반역과 거역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저는 담임목사님의 또 한 번의 용서를 통해 ‘불화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붙어있는 것’이 반역자가 되지 않는 길인 것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떠날 생각을 버리고 교회에 붙어 있을 생각을 할 때 담임목사님의 리더십과 권위를 인정하게 되었고 담임목사님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었으며 담임목사님을 가장 귀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 평신도 목양의 길과 나의 비전 >
내 교회, 새중앙 교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성경적 교회입니다. 평신도 목양과 신본주의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해 날마다 큐티로 성경통독을 하며 교회 안에서 날마다 자라나기를 힘씁니다.
이 귀한 교회의 가치와 비전이 나의 가치와 나의 비전이며, 이 믿음의 길이 성공의 길이고 영광의
길이며 행복한 길인 것을 믿습니다. 이 비전을 함께 이루기 위해 셀장으로서 더욱 교회 안에서
사랑의 훈련이 필요함을 깨달게 됩니다. 우리 남성 4셀은 총 재적 인원 23명의 운정, 금촌, 통일동산, 일산, 서울지역 성도들로 구성되었으며 평균 80%이상의 주일성수 비율을 자랑하며, 올해 교회창립기념주일에는 제1회 새중앙 셀 봉사상을 수여 받았고, 헌신적인 장로님 네 분과 열정적인 열 분의 집사님, 순종적인 아홉 분의 성도님들이 셀로 모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신본주의 공동체를 세워 가고 있습니다.
내 교회 안에서 안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바르게 순종하며 훈련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공급받고, 성경으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나타내는 셀장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얼마 전 3개월간 지방근무로 수요일 담임목사님과 함께하는 셀장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고 금요
저녁 가정 셀 예배도 온전히 인도하지 못하게 되자, 셀장으로서 자존감도 무너지고 영적으로 흔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고 맡겨주시고 기다려주신 담임목사님의 배려로 다시 회복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셀이 남성 4셀과 5셀로 분리되는 마지막주일에는 23명 재적인원 전원이
예배에 출석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셀장인 제가 한 것은 전화와 문자로 초청한 것 뿐 이지만
예배의 자리로 그들의 발걸음을 옮겨주신 분은 성령하나님이심을 저는 잘 압니다.
셀장은 교회에서 임명 된 평신도 사역자임을, 또한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보살펴야할 목양자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셀장의 역할을 ‘사역자’라는 생각보다 ‘봉사자’ 나 ‘관리자’로 생각하며
셀 원들을 보살피며 섬기고 격려하며 사랑하는 영적리더이기 보다 주일예배 참석여부나 확인하며
얼굴도장이나 찍는 영향력 없는 셀장의 모습들을 벗어버리고 제게 주신 사명과 비전을 다시 붙잡겠습니다. 가족이나 친인척을 위해 기도하기에 앞서 먼저 영적 형제인 ‘셀원’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셀장이 되겠습니다. 나의 모든 것이 변화되도록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셀장이 되겠습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셀장이 되겠습니다. 세우신 주의사자 담임목사님을 사랑하며 더욱 존중하는 셀장이 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