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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새중앙교회 이야기

글쓴이 : 노성진

 

- 새중앙교회와의 첫 만남

 

초등학교 4학년 정도로 기억되는 어느 날 불현 듯 사람은 모두가 죽게 된다는 사실 앞에 절망에 빠진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고 부자인 사람도 언젠가는 죽게 되고 죽음 이후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어린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 당시 그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고 그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고 스로로 답을 내리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그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는 대대로 우상을 섬기며 살아온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께서는 2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시고 홀로 저희 두 형제를 키우시면서 힘들 땐 절에 가서 불공도 드리고 집안에 우환이 닥쳤을 땐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고향의 면소재지에 조그만 교회가 하나 있었지만 다니는 성도가 많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 중에서도 교회를 다니는 아이는 찾아 볼 수 없었고 (교회를 다닌 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음) 교회에 초청을 받아 본적도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친불교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 저는 자라면서 절에 가는 것이 좋았고 군대에서도 불교인으로 군 법당으로 종교행사를 참여하고 전역 후 이력서 종교란에도 불교라고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전역 후 여유롭지 못한 가정형편이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많은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게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도 어렸을 때부터 나를 힘들게 했던 인간의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에 직면하게 되면 힘들었고 그 해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영혼의 갈급함이 있어서였는지 불교 뿐 아니라 심지어 통일교, 대순진리회등 타 종교에 잠시 빠지기도 했었습니다. 잠을 자면 꿈에 귀신이 보이기도 하고 가위에 눌린 적이 자주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이런 저를 걱정하시며 절에 가서 부적을 만들어 가져와 품고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20대 중반의 다 큰 청년이었던 저의 지갑에는 항상 부적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쩔 땐 머리위에 식칼을 놓고 잠을 자면 귀신이 물러간다며 식칼을 놓고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가 다가왔지만 저는 그렇게 암흑 속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2001년 야간대리운전을 직업으로 일하고 있던 저는 일의 특성상 새벽에 퇴근을 했습니다. 가끔 퇴근 하면서 동료들과 술이라도 한잔 하는 날엔 새벽에 출근 하시는 어머니께서 음주운전하고 왔다고 걱정하실까봐 집 앞에 차를 주차하고 기다렸다가 어머니께서 출근 하시면 집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하루는 차에서 어머니께서 출근하시기를 기다리는데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갔다가 전역한지 얼마 안 된 동생이 그 새벽에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뒷모습이 너무나 활기차 보이고 어딘가 자기를 환영하면서 기다려 주는 곳을 가는 사람처럼 즐거워 보이고 발걸음이 가벼워보였습니다. 그 후로도 종종 그 시간에 퇴근을 하면 그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그렇게까지 어디를 가는지 궁금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시간에 새중앙교회로 새벽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었고 새벽예배를 마치고 곧바로 회사로 출근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생활에 규모가 없었고 덜렁대는 성격의 동생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교회를 나가고 전역한지 얼마 안 되어서 대학교에 복학하지 않고 회사까지 취직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무엇이 그를 변화시키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하고 있던 일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었던 저는 동생이 다니는 회사에 대해 알아보았고 얼마 후 저도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출퇴근을 제차로 같이 했습니다. 동생이 운전면허가 없어서 운전은 제가 했었는데 출근 첫 날부터 교회에서 가져온 설교 테잎을 틀어놓으면서 영업활동에도 도움이 되고 인생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좋은 말씀이니까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듣기 싫어도 운전을 해야 했던 저로서는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약 2개월 정도를 설교 테잎으로 말씀을 듣는데 솔직히 처음엔 내용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교회의 설교를 귀담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저로써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설교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은혜를 받은 것이지요. 무엇보다 목사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어떤 분일지 궁금한 마음이 생겼고 이분을 직접 뵙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동생은 저를 교회로 끊임없이 초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신자라고 자처하고 있던 저로서는 기독교에 대해 반감이 있었기에 처음부터 초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저를 초청하였고 귀찮기도 하고 한번쯤은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마지못해 가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대답을 한 후에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바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타고 다니던 차를 바꾸게 되었고 어머니와 함께 무사고 운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는데 열려진 트렁크 문에 이마가 찢어지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번뜩 "교회에 나간다고 해놓고 안 나가서 하나님이 벌을 주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주 주일에(2001년 5월) 강북구 미아동 진영빌딩에 위치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불교행사가 없던 날 밖에 나가고 싶어 따라간 군대교회를 제외하곤 처음으로 교회를 경험한 저로서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습니다. 그래도 설교 테잎으로만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인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직접 듣게 된 것이 좋았고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행복하고 밝은 표정이었고 친절하게 저를 맞아주는 모습에 이 교회에 잘 정착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바로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 교회에서 새 생명을 얻다

 

그 당시 새가족 양육과 청년부를 담당하고 계셨던 전도사님께 양육을 받았습니다. 새가족 양육을 받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저는 새롭게 다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이 형제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죽으신지 사흘 만에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형제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세요. 그럼 형제님은 영생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는 전도사님의 권면에 믿어져서 아멘 했다기 보단 믿고 싶어서 아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멘을 하고나니 진짜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진정한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 그동안 해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염려했던 죽음의 문제가 해결 되니 너무 기뻤습니다.

교회 생활 제대로 열심히 해보고 싶었습니다. 동생은 제대로 된 성도라면 새벽예배도 참석해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새벽예배를 나가기로 했는데 처음 나가게 된 날이 토요일이었습니다. 교회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동생도 등록한지 얼마 안되었고 새벽예배를 자주 참석했던 것이 아니어서 토요일과 주일엔 새벽예배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는 예배와 큐티를 강조하셨습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삶의 성공자라는 말씀을 수도 없이 하셨고 우리교회의 구호였습니다. 일주일에 10번의 예배에 모든 성도들이 참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예배는 열정이 넘쳤습니다. 다른 교회에 다녀보지 않아서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모든 예배가 뜨거웠습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목사님의 말씀은 매 예배마다 나의 영혼을 찔러 쪼개었고 회개와 결단을 하게 만들었고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들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준비하는 전사들처럼 눈빛이 반짝 거렸고 성령 충만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성경통독 큐티는 침례교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성도가 성경을 읽지 않고 신앙생활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는 기본적으로 매일 10장씩 읽으라고 분량을 정해주셨고 예배 시간마다 제대로 읽었는지 출석 체크하시듯 확인까지 하셨습니다. 또한 목사님께서는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요 우리는 그 몸의 지체라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캐나다에서 예수님을 만나시고 예수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신 후

에베소서 1장 23절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말씀을 통해 교회를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임을 성경을 통해 깨닫고 영광스런 교회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시게 되었다는 간증이 저에게 큰 은혜와 도전이 되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거룩하신 예수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는 길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모든 예배와 모든 행사에 참석을 하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봉사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등록 후 얼마 되지 않아 의정부로 주일 차량봉사를 시작했고 여름 수련회에 참석하여 침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를 처음 믿는 새가족 이었지만 말씀이 믿어지고 내 마음이 동의가 되니 교회에서 권면하고 가르치는 모든 것이 마땅하게 여겨졌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모든 것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교회를 통해 축복을 공급받다

 

교회를 등록하고 출석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직장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집이 멀어서 출퇴근이 쉽지 않았고 서울에 하숙할 곳을 알아보다가 저희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자연스럽게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고 선데이 크리스찬이었던 아내를 우리 새중앙교회에 인도하여 같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섬기던 교회에서 주일 낮 예배만 드렸던 아내도 우리교회에 등록하고 은혜를 받자 열심을 내기 시작했고 함께 청년부에 소속되어 전도하고 교회 행사에 적극 참여하며 교회생활에 적응을 했습니다. 교회생활을 빼고는 서로의 삶이 설명이 안될 만큼 교회생활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계속 부흥하여 미아동에서 수유동으로 새성전을 얻어 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교회생활은 적응을 잘 하고 신앙생활에 기쁨이 넘쳤지만 회사일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영업활동이 원활이 이루어지지 않아 재고가 쌓이게 되었고 많은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빨리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싶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양가 간에 부담 없이 결혼식만 올리고 산다 할지라도 빚이 많던 저로서는 결혼식은 엄두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제1회 오벧에돔 축복운동을 시작한다는 광고가 나왔습니다. 하나님께 3개월만 예배 제대로 드리면 전국적으로 소문나는 복을 주시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예배에 집중해보자는 말씀에 귀가 번쩍 열렸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예배를 그냥 드리는 것과 서원하고 드리는 것은 다릅니다. 3개월간 모든 예배를 다 참석하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결단도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하니 모두가 기도로 준비합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석 달이 아니라 평생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사는 것이 성도의 가장 큰 복 일 텐데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 하나님께 “평생 예배의 자리를 다 지키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기도하며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교회 출석하면서도 조금씩 마셔왔던 술도 완전히 끊게 되었습니다.

2002년 2월, 그렇게 첫 번째 오벧에돔 축복운동이 시작되었고 저희부부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예배를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오벧에돔 축복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있었습니다. 결혼식 날짜가 오벧에돔 축복운동이 끝나는 다음 주로 잡히고 결혼식 장소는 담임목사님의 배려주셔서 교회에서 하기로 결정 된 것입니다. 결혼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 큰 비용 들이지 않고 결혼식을 올리게 된 저희 부부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러나 제1회 오벧에돔 축복운동의 진정한 복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벧에돔 예배기간 마지막 부흥집회 때 강사 목사님과 담임목사님께서 기도하는 성도들을 안수하시며 기도해주시는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성령의 역사가 눈앞에서 펼쳐졌습니다. 성도들이 방언을 하며 회개의 눈물을 쏟아내고 성령의 역사를 주체 못하고 쓰러지고 밤이 새도록 기도하다 새벽에나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 때 지나온 삶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삶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방언의 은사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다니지 않았어도 나름 괜찮은 성품에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 않으며 살아온 나의 삶이 크게 잘못된 것은 없다고, 이제 신앙생활까지 시작 했으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가는 거라 착각하고 있었던 저에게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그저 죄인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벧에돔 예배를 통해 성도들은 예배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고 더욱 예배로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2002년 대한민국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던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도 우리교회의 예배에 대한 열정을 꺽지 못했습니다.

2002년 가을 늘어난 부채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 회사 영업을 정리하고 퀵써비스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담임목사님께서 저희 가정에 첫 심방을 오셔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때 주셨던 말씀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17절) 말씀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정을 이루고 현실의 삶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담임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주신 말씀이 큰 위로와 실제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2003년 4월 27일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첫째 아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내가 임신 기간 내내 물도 삼키기 어려울 만큼 입덧이 심해 고생을 했었고 그날이 교회 창립기념 3주년 기념 주일로 저희 부부 모두가 집사임명을 받게 되는 날이라 출산의 감격은 더욱 컸습니다. 예배를 모두 마치고 아내와 아이가 있는 산부인과로 달려가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울음소리가 모기 소리처럼 작고 젖도 힘껏 빨지를 못했습니다. 심하게 울면서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 파랗게 변하는 청색증 증상까지 나타났습니다. 담당 의사선생님은 아무래도 아이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못한 것 같으니 큰 병원으로 옮겨 갈 것을 권했고 근처에서 가장 큰 소아병동이 있는 상계 백병원으로 아이를 데려가 진료를 받았습니다. 진료를 마친 후 아이는 곧 바로 소아 중환아실로 옮겨졌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담당 의사선생님은 아이의 상태가 매우 불안정하며 남자아이처럼 보이지만 여자아이 일수도 있다며 염색체 검사를 비롯해 여러 복합적인 검사를 해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고 중환자실에 들여보낸 것도 기가 막히는데 의사의 부정적인 소견들은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듣는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검사결과 아이는 스스로 호르몬 분비가 안 되는 희귀한 장애가 있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호르몬이 나오지 않으니 성징이 명확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 할 수 있는 몸의 발란스가 깨어지고 면역력도 약하고 신체 성장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 사례가 몇 안 되는 희귀한 장애다 보니 담당의사도 혼란을 겪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제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제가 의지 할 곳은 하나님과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교회와 담임 목사님께 중보기도를 요청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찾아와 기도해 주시고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기도해 주셨습니다. 3개월간 하루에 1번 30분만 허용되는 면회시간에 아이를 만져보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기도하고 나와서 다시 일터에 나가 일을 하고 퇴근할 땐 교회에 들러 기도하고 귀가를 했습니다. 부모로서 아이의 장애와 고통이 내 죄 때문인 것 같은 죄책감이 가장 제 자신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때 큐티 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한복음 9장 2~3절) 그 누구의 위로보다 하나님의 위로와 약속이 저에게 힘이 되었고 오히려 기대와 소망으로 마음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큐티를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응답하셨어도 저는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님께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실 것을 부탁드렸는데 요한복음 11장 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말씀을 근거로 “신영”이란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큐티를 통해 받은 응답이 담임목사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으로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확증되는 것 같아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던 중 담임 목사님께서 제게 먹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과 교회에 맡기고 하나님의 일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교회 사역을 권면하셨습니다. 제겐 동경의 대상이었던 사역자가 된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멘을 했고 목사님께서 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하라고 하셔서 아내에게 동의를 구하고 교회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지체들과 담임목사님의 기도 덕분에 드디어 신영이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안정이 되어 3개월 만에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산 당일 품에 한번 안아보고 3개월간 유리벽 너머로만 바라볼 뿐 안아보지 못했던 아이를 품에 안게 되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신영이를 키우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기존에 이런 장애로 치료를 한 데이터가 부족하다보니 신영이가 먹고 배설하는 양을 전부 기록을 해서 병원에 제출하고 호르몬제 처방을 받았습니다. 인위적으로 투약을 하지만 호르몬이 몸에서 저절로 생성되는 정상인처럼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호르몬이 부족할 때 식욕이 생기지 않아 잘 먹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먹지 않으니 몸에 칼로리가 부족해지고 저혈당 증상이 자주 나타났습니다.

그러던 중 2006년 11월 어느 날 심각한 저혈당 증세가 신영이에게 나타나며 몸에 힘이 빠지고 의식까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안고 서울대학병원 응급실로 찾아갔습니다. 그날따라 응급실에 환자가 너무 많아 빈자리가 없었고 의료진들은 먼저 온 다른 환자들을 처치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위급을 다투는 상황에 응급실에 도착한지 2시간이 지나도록 어떠한 처치도 신영이에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신영이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습니다. 3시간이 다 되어갈 때 의사선생님이 와서 수액투여와 검사를 위해 주사를 놓으려 하는데 혈관이 잡히지 않아 주사바늘로 여러 곳을 찔러야 했습니다. 그 때 아이의 상태가 이상해지면서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을 더 바늘로 찌른 후에야 혈관을 잡고 수액을 투여했지만 경기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경기로 인해 뇌가 심하게 손상 될 수 있기에 빨리 경기를 잡아야 했습니다. 경기를 치료하려면 전신 마취를 하고 산소호흡기와 생명 유지 장치를 사용해야 하는데 응급실에도 중환자실에도 자리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불가능했고 자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는 점점 힘들어하는데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예배가 있는 수요일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아이 곁에 있어도 된다고 하셨지만 아내와 어머니는 아이를 곁에서 지키고 저는 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같습니다. 사역자로서 예배의 자리를 지켜야하는 의무감도 있었지만 그보단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한 간절함이 더 컸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예배 전 찬양소리가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고 마치 하나님께서 내 사정을 다 아시고 품에 안아주시고 위로해주시는 따뜻함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예배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두려워하는 저에게 안심하라 하셨고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병원으로 갔지만 여전히 아이의 상태는 좋지 않았고 중환자실에 자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온 가족이 응급실에서 기도하며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감사하게도 다음날 아침 일찍 중환자실에 자리가 나왔고 아이의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전신마취 후 약물을 투여하여 경기를 멈추게 하는 치료를 했습니다. 치료는 잘 되어 경기는 멈췄지만 아이가 쉽게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뇌CT 촬영을 해보니 이미 뇌가 많이 부어 있었고 담당의사는 신영이가 깨어나도 몸의 왼쪽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의 기도에 산소호흡관을 잘못 삽입하여 염증이 생겼고 기도가 막혀 호흡을 할 수 없게 되자 기관절개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는 교회 리더들 모임과 예배시간에 광고를 해 신영이의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말씀하셨고 온 교회가 신영이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아이를 일반 병실로 옮기고 담임목사님께서 심방을 와 주셨습니다. 이 당시는 담임목사님께서도 목디스크 수술을 받으신 후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아직 강단에 서지 못하시고 요양 중이셨습니다. 불편한 몸이셨지만 찾아오셔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마치 엘리야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기도하듯 신영이의 작은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쓰다듬고 만져주시면서 간절하게 기도해 주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인 저도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할 수 없을 만큼 정성스럽게 기도해주신 후 목사님께서 “노목사 이제 됐다. 다 나았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목사님께서 나았다고 하시니 아멘! 하였습니다.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로 돌아와 사역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급하게 전화를 하셔서 아이가 깨어났고 잘 움직인다고 하셨습니다. 저녁에 퇴근 후 병원에 가서 아이를 보니 정말 상태가 많이 좋아보였습니다. 다음날 담당의사가 회진을 돌면서 신영이를 보더니 아이가 저렇게 움직이는 건 정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뇌 CT사진 상으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해도 하나님이 하시니 가능한 것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신영이의 뇌 CT사진을 찍어서 의사들이 보면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아이가 이렇게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느냐고) 그 후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기도해 주신 덕분에 아이는 치료를 잘 마치고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기도가 아이었다면 그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성도님들이 0시예배 신년 기도제목에 자신의 기도제목보다 신영이의 건강회복을 기도제목으로 울린 분들도 있었습니다.

 

후로도 하나님께서는 신영이를 통해 당신의 살아계심을 저희 가족들과 교회 지체들이 볼 수 있도록 한 번 더 역사하셨습니다. 2008년 2월 수유동 성전에서 금요예배를 마치고 기도하고 있는데 전도사님께서 제 어깨를 두드리시며 신영이가 이상하다며 로비에 빨리 나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로비에 나가보니 어머니께서 신영이를 안고 울고 계셨습니다. 신영이가 기관절개를 한 후로는 코와 입으로 호흡을 할 수 없어 목에 끼워진 케눌라를 통해 호흡을 하는데 로비에서 뛰어 놀다가 토하게 되었고 이물질이 케눌라를 막아 호흡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 당시 아내는 둘째 출산 후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느라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고 어머니께서 아이를 두고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로비에 교회학교 아이들만 있는 상태에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신영이는 숨이 막히자 있는 힘을 다해 호흡하려 했었는지 얼굴에 실핏줄이 다 터져 있었고 입술에 거품이 물려 있었으며 이미 숨을 못 쉰지 몇 분이 지난 후라 얼굴과 몸이 파랗게 변해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없는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며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외치며 울고 계셨고 주위에는 아이들과 기도를 마치고 나온 성도들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본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신영이를 만지며 이름만 부르고만 있었습니다. 그 때 담임목사님께서 기도하고 나오시며 우리에게로 오셨고 먼저 어머니를 진정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신영이 목에 이물질들을 깨끗하게 제거하라 하신 후 신영이의 머리에 안수하시며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신영이의 호흡이 돌아오게 해달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주셨습니다. 잠시 후 마치 꺼졌던 초에 불이 다시 붙듯이 신영이의 호흡이 돌아왔고 금방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신영이는 마치 악몽을 꾸다 깬 아이처럼 할머니를 바라보며 자기가 힘들 때 어디 갔었냐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그 밤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왔던 많은 지체들이 눈으로 목격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또 한 번 신영이에게 주신 이름대로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교회창립 3주년에 태어나서 교회와 담임목사님의 기도를 먹고 자란 아이가 이제 14살이 되었습니다.

 

- 첫 번째 선택 (사역의 길)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고 처음 청년부 간사부터 시작하여 유년부와 초등부 유치부등 교회학교 사역을 한동안 하였습니다. 신앙의 시작도 늦고 교회에 대한 경험도 짧았기에 사역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고 담임목사님과의 매일 아침 큐티나눔을 통해 영적인 기초를 다지고 지시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사역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교회학교 사역을 하면서는 큰 부흥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역이 익숙해지고 부흥이 되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더 큰 부흥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만 좋다면 세상의 방법을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어느 날 하나님의 법은 세상의 법과 정반대로 생각하면 딱 맞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은 어울릴 수 없다고...그러나 저는 세상의 것 중에도, 나의 경험과 지식 중에도 선한 것이 있고 그것들을 하나님께서도 사용하실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사역이 교회의 사역이 아닌 내 사역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영광스런 곳인데 영광스럽지 못하게 사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는 그러한 생각으로 사역을 할 때마다 사역을 옮기게 하셨습니다. 교회학교에서 장년부로 다시 교회학교로 다시 청년부로.. 목사님께서 왜 그러시는지를 알면서도 사역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또 교회의 사역이 아닌 내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사역을 하려고 하니 힘들었습니다. 쉽게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고 그 때마다 “어쩔 수 없지”하며 변명과 핑계 뒤에 제 자신을 숨기곤 했습니다.

교회가 수유동에서 파주로 이전을 하게 되면서 저 또한 사역자로서 큰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이기적이었고 세속적이었고 영광스럽지 못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수유동에서 파주로 성전을 옮길 때 사역자들에게 과거의 생각의 틀과 사역의 습관등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분명히 도태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사역을 그만 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떠나게 될 것이라고 하시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특별히 사역을 하면서 변명과 핑계를 대는 습관을 고치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세우신 사역자였기에 각별한 관심으로 목양의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말씀하시 듯 안타까운 심정으로 권면하시는 말씀이었지만 저는 목사님께서 저의 사정을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라 여기며 서운한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두고 교회의 부흥에 걸림돌이 내 자신이라는 생각에 담임목사님의 두 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11년 10월 풀타임사역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 때를 생각하면 목사님께 너무 송구하고 아버지께 불효한 자식처럼 제 자신을 자책하게 됩니다. 목사님! 그 때 너무 죄송했습니다.

 

- 두 번째 선택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담임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풀타임 사역자의 길을 중간에 포기했으나 하나님께서 나를 지체로 삼아주신 교회를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새중앙교회를 내교회로 고백하게 하실 때 내가 교회를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중앙교회에 지체로 나를 붙여주셨기에 내 스스로가 교회에서 분리되는 것은 예수님의 몸을 찢는 죄를 범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결코 교회에서 떨어지지 않겠다고 고백했었습니다. 가정에서 어머님께 태어나고 자라났듯이 저는 교회 안에 안에서 태어났고 자라났습니다.

평신도로서 제 2의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아무렇지 않게 교회생활을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고집과 불순종으로 나타난 결과기에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인정하고 계속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평신도로 신앙생활을 하니 큐티가 금방 무너졌습니다. 직장에 출퇴근을 하면서 피곤하면 안하게 되거나 저녁에 숙제 마치듯 하는 등 꾸준함으로 큐티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담임목사님께서는 저를 스데반팀 팀장으로 세워주셨고 남성 셀이 독립적으로 분리되면서 셀장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셀장으로 사역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큐티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겠습니다 서원했던 것이 다시 떠올라 새벽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기도하고 큐티하며 나만의 새벽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셀장 사역을 시작한 후 어느 날 주일예배 가운데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레마의 말씀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139:14~16절)

그동안 수없이 봐왔고 알고 있었던 말씀인데 이날은 이 말씀이 내 심령을 장악하였습니다. “지금 처한 상황, 있는 터전 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거기에서 최선을 다하라” 라는 말씀에 순종을 결단하게 됩니다. 당시 회사 일을 하면서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자영업으로 다시 시작할까 고민하고 있었던 저는 그 고민을 접고 회사에 뿌리를 내리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 후 곧바로 회사 시스템이 바뀌게 되고 저는 승진도하고 연봉도 오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신영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과거의 힘든 사건들과 사역을 하면서 입었던 상처들이 모두 영적으로 해석이 되면서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셀원 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셀원들이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희 셀에는 연세가 많으시고 병원에 입원해 계신분도 계시고 지적장애를 가지고 계신분도 있습니다. 직장관계로 격주로 혹은 한 달에 한번, 두 달에 한 번씩 예배를 참석하는 분도 계십니다. 아픈 손가락 신영이를 양육하면서 받았던 은혜와 긍휼의 마음으로 셀원분들 중 아픈 손가락에 더 관심을 가지고 누구한분 소홀하게 대하거나 차별의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섬기기로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역과 셀에 대한 비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영적인 이름은 “은혜”입니다. 저는 은혜 받은 자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제게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구원해주신 그 은혜만으로도 평생 감사해도 모자랍니다. 내가 뭔가를 더 받아야 되는 사람도 아니며 뭔가를 더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가 아니라 이미 주신 은혜를 항상 잊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저의 본분입니다.

8년여의 풀타임사역자로 섬기며 담임목사님을 통해 받은 예배 훈련과 큐티 훈련은 평신도로 섬기면서도 가장 유익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만드는 영적 유산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나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죄인임을 날마다 고백하며 사는 삶을 살아갈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립보서3:7~9)


이제 평신도 목회자로 새롭게 셀장으로 세워진 제가 두 번째 선택을 잘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합니다. 저와 우리 남성2셀원들이 가장 성경적인교회의 지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하기 원합니다. 날마다 자라남에 대한 열망으로 충만해져서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고 개인주의 버리고 신본주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축복하며 세워주는 공동체, 흠도 티도 주름 잡힌 것 없는 영광스런교회의 지체가 되기를 더욱 힘쓰기 원합니다. 어떤 셀원이 우리 셀에 들어와도 셀로 융화가 되고 말씀으로 교제하고 서로의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아름다운 공동체, 하나님께 거룩하게 쓰임받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새중앙교회를 세우시고 나를 주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나를 품어주시고 훈련하셔서 자라나도록 이끌어 주시는 우리의 리더 담임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나의 새중앙교회 이야기는 남성 2셀의 이야기로 20주년, 30주년을 향해 계속 이어져 갑니다.


나의 새중앙교회 이야기(노성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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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개인정보의 기술적/ 관리적 보호 대책

[교회명] 는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취급함에 있어 개인정보가 분실, 도난, 누출, 변조 또는 훼손되지 않도록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 관리적 조치 : 내부관리계획 수립·시행
- 기술적 조치 : 개인정보처리시스템 접근권한 관리, 고유식별정보 등의 암호화
- 물리적 조치 : 전산실, 자료 보관실 등의 접근 통제
교회내 개인정보보호방침 등을 통하여 [교회명] 개인정보취급방침의 이행사항 및 담당자의 준수여부를 확인하여 문제가 발견될 경우 즉시 수정하고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 이용자 본인의 부주의나 인터넷상의 문제로 ID,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발생한 문제에 대해 [교회명] 는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10. 개인정보관리책임자 및 담당자의 연락처

[교회명] 은(는)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업무를 총괄해서 책임지고, 개인정보 처리와 관련한 정보주체의 불만처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보호책임자를 지정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 책임자]
성명 : [책임자명]
직책 : [책임자직책]
직급 : [책임자직급]
연락처 : [책임자 전화번호] [책임자 이메일]

[개인정보 보호 담당부서]
부서명 : [담당부서명]
연락처 : [담당자 전화번호] [담당자 이메일]

정보주체께서는 [교회명] 의 서비스(또는 사업)을 이용하시면서 발생한 모든 개인정보 보호 관련 문의, 불만처리, 피해구제 등에 관한 사항을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및 담당부서로 문의하실 수 있습니다. [교회명] 은(는) 정보주체의 문의에 대해 지체 없이 답변 및 처리해드릴 것입니다.

11. 개인정보 열람청구 처리 부서

정보주체는 「개인정보 보호법」 제35조에 따른 개인정보의 열람 청구를 아래의 부서에 할 수 있습니다.
[교회명] 은(는)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열람청구가 신속하게 처리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개인정보 열람청구 접수·처리 부서
부서명 : [처리부서명]
담당자 : [처리당당자명]
연락처 : [처리자 전화번호] [처리자 이메일]

12. 고정형 영상정보처리기기(CCTV) 운영·관리

[교회명] 는 다음과 같이 고정형 영상정보처리기기(CCTV)를 운영하고 [있습니다./있지 않습니다.]

[설치 목적 : 시설 안전 관리, 화재 예방, 범죄 예방
설치 위치 : [설치위치]
촬영 범위 : 설치 위치 주변
촬영 시간 : 24시간 연속 촬영
보관 기간 : [촬영일로부터 30일 (이후 자동 삭제) : 보관기간]
관리 책임자 : [CCTV 책임자]
영상정보는 수집 목적 이외의 용도로 활용하지 않으며, 관계 법령에 따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3자에게 제공하지 않습니다.]

13. 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정보주체는 개인정보침해로 인한 구제를 받기 위하여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 등에 분쟁해결이나 상담 등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 기타 개인정보침해의 신고, 상담에 대하여는 아래의 기관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 (국번없이) 1833-6972 (www.kopico.go.kr)
2.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 : (국번없이) 118 (privacy.kisa.or.kr)
3. 대검찰청 : (국번없이) 1301 (www.spo.go.kr)
4. 경찰청 : (국번없이) 182 (ecrm.cyber.go.kr)

14. 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에 관한 사항

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은 시행일로부터 적용되며, 법령 및 방침에 따른 변경 내용의 추가, 삭제 및 정정이 있는 경우에는 변경사항의 시행 7일 전부터 [고지장소(예:공지사항)] 을 통하여 고지할 것입니다.
단, 정보주체의 권리·의무에 중요한 변경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최소 30일 전에 [고지장소(예:공지사항)] 등을 통해 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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