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중앙교회와의첫 만남]청년2셀 서범근
새중앙교회와의 첫 만남은 도봉산 기도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전까지는 대광교회를 다녔는데 그 당시 저는 친구들을데리고 가서 예배드린 후 같이 놀기 위해 교회를 다녔습니다.친구를 데리러 간다고 하고서는 친구 집에서 놀다가 예배가 끝날 때쯤 은근슬쩍 들어오곤 했습니다.가끔씩은 놀다너무 늦어서 가지 않았던 날도 있었는데그러다 어머니에게 들키면 집에 와서 매를 맞곤 했습니다. 가기는 싫은데 안 갈 수는 없으니 친구들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문제는도봉산 기도원은 버스를 타고 가야 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가기 어려웠습니다. 친구들은 거리가 멀다거나 다른 이유를 대며 제 간곡한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원에 도착 후 화장실에 갔다가 예배실 옆 방으로 몰래 들어왔습니다. 그 때, 저와 비슷한 이유로 끌려온 또래가 있어서 그 친구와 함께 예배 끝날 때까지 숨어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새중앙교회와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새 성전으로 이전 후, 저는 중고등부 학생이 되었습니다. 중고등부 예배가 따로 있었는지는 잘 생각나진 않지만 주일이나 토요일에는 중고등부 학생들이 모임을 가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저는 억지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기도였습니다. 어른예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모습은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저와 비슷한 나이의 학생들이 똑같이 손들며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가 싶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마음들이 많았습니다. 서로 대화를 나눌 때도 어찌나 하나님 말씀이나 은혜를 자주 말하는지 저와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저는 이들 사이에 껴서 예배만 왔다가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구원의 확신]
교회가 수유동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어머니는 무슨 은혜를 받았는지 저를 새벽예배로 데리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예배도 가기 싫어하는데 새벽예배를 가야 된다니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그 때는 방학이라 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곤 했는데 저는이번 방학은 더 늦게 자서어머니가 깨울 수 없을 정도로 잠이 들자고 결심했습니다. 다음날 저를 깨우는 엄마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연히 한낮이겠거니 하고 눈을 비비며 밖을 봤는데 온통 시커먼 어둠뿐이었습니다. 새벽이 오고 말았습니다. 저는 다시 못들은 척하고 잠을 자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생애 첫 새벽예배를 가게 되었고 예배 시간 내내 꾸벅 꾸벅 졸기를 반복하며 속으로 다음날은 꼭 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이렇게 방학기간 내내 어머니와 저 사이의 사투가 새벽마다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결과는 저의 패배였고 어머니가 예배 시간 때문에 저를 데리고 가지 못한날에는담당선생님이나 전도사님이 찾아와서 깨우곤 했는데 제 방 창문을 두드리며 조용하지만 다급한 목소리로 “서범근, 야 서범근, 일어나야지, 일어나”외치며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들렸습니다. 그 때가 여름이어서 실수로 창문을 열어 놓고 자곤 했는데열린 창문 틈 사이로잡히는 제방 물건을 던져 저를 깨우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제서야 고백하지만 일어났는데도 더 자고 싶어서, 가고 싶지 않아서모른 체하고 다시 잔 적도 있었습니다. 회개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새벽을 통해 저를 만나기 원하셔서 어머니나 그 분들을 붙여주신 것 같습니다. 새벽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날도 여타 다른 날과 동일하게 새벽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평소와는 다르게 졸리지가 않았습니다. 더욱 놀랐던 것은 찬양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찬양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왈칵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찬양의 가사들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사들에 공감이 되고 가사 하나하나가 믿어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날 새벽예배 후 예배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간 주일예배 때 처음으로 오후예배를 드렸고 그 예배를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새벽예배 때 받았던 은혜들이 담임목사님의 말씀과 찬양과 기도 가운데 제 안에 흘러 들어왔고새벽에 경험했던 눈물이 다시 한번 터져 나오며 하나님께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날의 영적 대지진을 계기로 제 삶의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주일 오전, 오후예배와 주중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교회 오는 것, 예배 드리는 것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과거에는 무섭다고만 생각했던 담임목사님의 불 같은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이전에는 이상하다고 여긴 중고등부 학생들과 같이 손들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시험과 성숙]
하루는 예배 중 담임목사님께서 방언에 대해 말씀하시며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오늘 꼭 방언을 받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방언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방언을 받고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기도 시간이 되어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또는 강단 앞으로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이곳 저곳에서 방언기도를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저 역시 간절한 마음으로 방언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기도해도 방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주위에서는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고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리는 기도도 들렸습니다. 이 후 시간은 점점 흘러 하나 둘씩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기 시작했고 성전 안에는 제 기도 소리만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혼자 남아 기도하는데 그때쯤 되니 기도가 아니라 왜 나는 안되냐고 하나님께 불평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홀로 기도하던 중 담임목사님께서 오셔서 안수기도를 해주시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부터 제 믿음생활은 삐뚤어졌고 흔히들 말하는 시험에 들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잡생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고 싶어했던 교회로 오는 길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받았는데 왜 나는 받지 못했을까, 나는 안되나 보다 이런 생각들이 자꾸 자신을 움츠리게 만들고 성장하던 믿음은 끝이 없이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전교인 여름수련회가다가왔습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계속된 권유에 마지 못해 참여해서 예배를 드리는데 말씀을 들으면서 딱딱한 제 마음이 조금씩 열리게 됨을 느꼈고 하나님께서 기도의 마음을 계속해서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의 말씀 후 다같이 기도를 시작하는데 그 순간 제 입에서 방언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감사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그 동안 불평했던 제 모습을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이 날 이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더욱 건강해졌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주신다는 믿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때가 제가 방언 받기 가장 좋은 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간을 통해 스스로의 교만함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주십니다.
[파주시 문발동 새중앙교회]
지금 생각해봐도 파주로 터전을 옮길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파주로 옮긴 초기에는 서울에서 거주했기 때문에 서울과 파주를 왔다 갔다 했고 당시 사역하시던 어머니도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셨습니다. 그 때까지제게 있어 새중앙교회는 내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함께 믿음 생활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내 교회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아니 내 교회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파주로 가야 되나,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고민도 없었습니다. 거리가 멀어지자 전에 빠짐없이 드리던수요예배도 멀다는 핑계를 대며 가지 않았고 주일에만 가서 예배 드리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이런 저와 달리 어머니는 하루 빨리 파주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믿지 않는 아버지가 문제였습니다. 처음엔 완강하게안 된다고 했던 아버지도 계속 된 어머니의 권유에 백기를 들었고 우리 집은 서울을 떠나 파주로 가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사는 것이 좋았고 친구들이 전부 동네 주변에 살았기 때문에떠나기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영적인 가장인 어머니의 결정에 군말 없이 따른 것이 지금 와서 보면 참 감사합니다.
[교사, 셀장 사역의 시작]
그리고 파주로 이사 오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교사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고 초등부를 거쳐 지금은 중고등부 교사로봉사하고 있습니다. 교사를 통해 제가받은 가장 큰 선물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사실 주일예배를 오지 않는 학생들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예배 참석은 했던 저를 돌이켜보면서 그 학생들이 구원을 받든 아직 받지 못하든 간에 예배는 와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보다 실망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이 예배 때 말씀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알도록 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출석 결석 숫자에만 관심이 쏠리곤 했습니다. 그러나이러한 생각은 교사 모임을 통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님, 전도사님, 교사 선생님과의 모임으로 교사가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제가 믿음의 전달자로서학생들을 양육하는 목양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교사의일에만 집중하고 일주일 중 하루, 주일날만 봉사하고 주일날로 끝나는 모습이었지만 담임목사님, 중고등부 선생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 지도를 받으면서 영혼을 책임지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후 학생들과의 관계도 변화되어 주중 심방으로 내 영혼들을 알기 원하는 마음을 가지며 섬기고 있고 말씀을 읽는 복된 습관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자 날마다 성경을 읽는 리딩바이블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는 축복의 습관을 가짐으로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안의 축적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고등부 학생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2015년 봄쯤, 부목사님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저는 교회학교 교사라서 전도사님을 통해 공지나 연락을받아왔는데느닷없이 부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역시 그런 예감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제가 청년2셀 셀장으로 봉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으시는 내용이었습니다. 듣자마자 당황한 것이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에도 중고등부 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셀장봉사라니…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미루지 않고 바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임시로 하고 있다가 다른 분을 세우시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교회에 순종하자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새중앙교회의 지체로 함께 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것 중 하나는 순종의 속도입니다. 예전에는 생각해본다고 하거나 미루면서 순종하지 않았고해도 억지로 한 적이 많았지만 담임목사님의 말씀 중심, 예배 중심, 교회 중심의 삶, 무엇이든 말씀대로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는설교말씀을 들으면서 제 안의 고집의 믿음은 죽고 순종의믿음은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맡은 봉사의 자리를 제 마음대로 내려놓지 않도록 붙잡아주셨고교회 안에서 그 자리를 꾸준히 지킴을 통해저를 성숙시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권할 때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고 꾸준히 그 자리를 지킬 때 하나님께서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있음을 알기에 셀장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사 초기의 모습처럼 저에게는 영혼의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낯을 가리는 성격으로기존 셀원들과 새로운 셀원들을 심방하고 섬기는 것이어려웠고 그저 초청에 하는 것에 급급한 모습이 많았습니다. 셀원을 초청하고 셀 모임을 인도하는 역할에만 집중했지 정말로 필요한 목양자로서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 교사와 셀장이라는 영혼 사역의 자리로 불러주시고 그 안에서 하나씩 하나씩 저를 바꾸어 가셨음을 보게 됩니다. 교회학교 교사모임과 마찬가지로 담임목사님과의 지속적인 셀장모임을 통해 셀장의 자리는 셀원들의 영혼을 책임지는 너무나 중요하고 복되고 영광스런 자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셀장사역의가치를 알게 되면서 셀예배과 셀원들을 대하는 제 모습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주의적이고 낯을 가리던 모습에서셀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알기 위해 어떻게 말하고 섬겨야 할지 고민하며 애 쓰기 시작했고 교회와 셀원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셀예배를 통해 함께 기뻐하고 공감하고 말씀의 은혜를 나누면서 교회에 뿌리박고 성장하는 셀원들이 점점 늘어나는 축복도 주셨습니다. 교사와 셀장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 안의 인본주의, 공로주의를 버리게 하시고 셀과 교회에 더욱 뿌리 박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감사하고 새중앙교회에 감사합니다.
[말씀 중심의 공동체 새중앙교회]
저에게 새중앙교회가 귀한 이유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원칙을 성경 그대로 정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큐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못할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말씀을 모르기에 내 상황과 감정, 환경대로 판단했지만 성경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시는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꾸준히 듣게 되면서 지금까지 내 마음대로 살았던 나 자신과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를 바꾸려는 영이 싸우기시작했습니다. 나 혼자 했다면 이 싸움에서 매번 내가 이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함께 거하며싸우니나는 점점 죽고 하나님의 영은 점점 살아나제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신앙의 습관들이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파주에 오고 난 이후 올바른 큐티의 습관을 가지게 되어 날마다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셨고 개인주의적인 제 모습을 바꾸어 교회의 지체로 공동체로 섬기게 만드셨습니다. 새중앙교회에서 저는 꾸준히 계속하는 것을 배우며 훈련 받았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목요일 저녁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있는제 모습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제 범주 안의 전도는 가족과 주변 관계를 통한 전도가 전부였고 길거리 전도는 믿음 좋은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청장년 전도를 통해 전도의 지경을 넓히시고 자신을 낮추는 섬김의 자세를 알려주셨습니다. 매번 전도 할 때마다 낯 가림 많은 제가 전도지를 건네며 교회와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전도 역시 저 혼자 하면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시간에 나와서 함께 전도하는 새중앙교회 지체 분들과 함께 있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중앙교회 안에서 이와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쉽게 실증내고 포기하는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과, 교회가, 담임목사님이 맞다면 내가 어떻든 상관없이 말씀대로 꾸준히 하는 것이 옳은 것임을 깨닫고 순종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믿음생활의 모토는 끝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맹목적으로 결과만을지향하고 인내하며 기다리지 못하고 넓은 길로 가려는 세대들로 가득합니다. 우리 새중앙교회는 좁은 길 바른 길로 갑니다. 말씀에 맞으면 맞는 것이고 틀리면 틀리다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성경말씀대로 나아갑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내 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인지 말씀 그대로 알려주시는 담임목사님과 사역자분들이 있습니다. 리딩바이블과 교회학교 예배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말씀을, 교회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교사선생님이 있고 영광스런 내 교회안에서 신본주의 공동체를 이루며 셀원들을 섬기는 셀장님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앞으로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과 내 교회 새중앙교회, 그리고 믿음의 동역자분들과 함께 끝까지 믿음과 축복의 길을 달려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