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원론과 교회론
유년남자셀 셀장 김찬훈
인간은 죄인입니다. 이 말은 인간은 죄 아래에 있다는 말입니다.(롬3:9) 우리는 죄의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생겼을까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 스스로의 영광을 위해서, 그분을 찬송하기 위해 지으셨습니다.(사43:7,21) 그러나 아담과 하와 이후,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의 영광만 추구하니 모든 것이 망가져버렸습니다.(롬5:12)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죽음으로 말입니다.(롬6:23) 왜 죽음일까요?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불러일으킵니다.(사59:2)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뒤 하나님으로부터 숨었습니다.(창3:8), 또한 하나님을 대면해도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남의 핑계를 대고 정당화를 시도했습니다.(창3:12) 이렇게 감추고 고집부리고 회개하지 않음으로 점점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의 운명은 죽음입니다. 모든 생명이 곧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와 죽음 앞에선 모든 것이 허무합니다. 현재와 죽음 사이를 살아가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안합니다.(전3:19-20) 살면서 기쁜 일이 있어도 그때 뿐입니다. 죄의 파도는 언제든지 내게 닥칠 수 있고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됩니다.
모든 인간에겐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습니다. 돈, 명예, 인생을 걸만한 가치 있는 것들을 말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구원은 없습니다. 영생이 없습니다.(전2:4-11)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이 모든 인간의 상태를 해결하셨다고 말합니다.(고전15:3-4) 이것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승리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고통받으시고 진짜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악 자체가 심판받았습니다.(골2:14-15) 악의 권세는 예수님을 삼켰고 그분은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영적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내려진 형벌처럼 보였던 이것은 악 자체 위에 내려진 형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량해주시려고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 안에서 죄를 심판하셨습니다.(롬8:3) 그렇기에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롬8:1) 죄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처벌이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에서 악의 권세가 무너졌고 현재는 마지막 발악을 하는 중입니다.(고전15:25-26)
우리는 말하자면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종전 사이의 일 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죄와 죽음에게 승리할 것입니다. 이 소식은 우리의 생각과 삶을 완전히 바꿉니다. 죄와 죽음이 불러온 모든 부조리와 허무는 이 소식으로 인해 지금 당장 사라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후 5:15)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납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로 본질이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고후5:17)
이것을 구원의 첫단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롬10:9~10, 엡2:8) 예수님이 주인이라는 고백은 배워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믿어져야 합니다.(고전12:3)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야만 구원의 첫 단계인 거듭남이 시작됩니다. 또한 반드시 침례받아야 합니다. 침례 없인 구원은 없습니다.(막16:16) 중요한 것은 거듭남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여정입니다.(롬8:30) 예수님의 모습까지 닮아가야 합니다.
두번째 단계, 자라남입니다.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빌2:12) 아이가 태어나서 부모의 DNA를 가지고 가정에서 부모를 닮아가듯이, 우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 딸로 태어나 하나님의 DNA를 가지고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 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남의 모든 과정이 훈련입니다.(딤전4:7-8) 훈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거침없이 순종할 수 있는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이 과정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룩함, 자라남입니다.
세번째 단계, 장성함(영화)입니다. 마침내 장성해서 구원이 완성되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영화의 모습은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삶의 영화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삶'을 살다가 우리 삶이 다윗, 사무엘, 요셉, 바울처럼 성경의 인물 같은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영광의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엡1:6,12) 우리의 가정과 셀에서 자녀들과 셀원들이 "아빠, 엄마처럼, 성도님처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신앙생활 하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는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② 마음의 영화입니다.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마음)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 구원의 완성이 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예수님의 마음처럼 한마음을 품고 겸손하게 서로를 높이며 이웃을 돌보는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빌2:2~5)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듬으시고 바꾸셔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도록 도와주십니다. ③ 몸의 영화입니다. 삶의 영화, 마음의 영화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몸의 영화는 죽음 이후에 아름다운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고전15:43,43,51) 이 땅에서 가졌던 질병이나 장애도 모두 고쳐져, 하나님이 창조하신 완벽한 인간의 모습,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여정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은혜로 됩니다.(엡2:8-9) 은혜는 가치를 깨닫는 것(카리스)입니다. 누구에게 가치가 발견됩니까? 하나님 앞에서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깨달아지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무엇을 해야 은혜 가운데 깨달아지고 믿음이 생길 수 있을까요? ① 성경을 매일 읽고 집중해서 주일 설교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에서부터 믿음이 생깁니다.(롬10:17) ②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롬1:17) 말씀을 집중해서 들으면 마음속에 한두 가지가 믿어집니다. 그것을 갖고 순종하면 점점 큰 믿음이 생깁니다. ③ 끊임없이 영광의 모습을 보기 시작하면 바뀌어집니다.(고후3:18)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성경대로 바른 교회, 구원받기 좋은 교회 안에서 온전한 구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 속해 있느냐가 구원의 결정적인 요소가 됩니다. 성경은 교회를 무엇으로 말하고 있을까요? 셀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교회입니다.(몬1:2) 셀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엡1:23) 셀교회 안에서 함부로 하는 것은 예수님의 몸을 향하여 찢어놓는 것입니다. 천국에 갈 수 없는 행위입니다. 힘써 모여야 합니다.(히10:25)
또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곳이 셀교회입니다.(마16:18) 가장 안전한 곳이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단순히 출석하는 것을 넘어서, 주님의 몸의 지체가 되어야 음부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셀교회에는 천국 열쇠가 있습니다.(마16:19) 셀교회 안에 뿌리를 내려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성공도, 직장, 사업, 가정에서의 헌신도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우리를 천국에 가게 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셀교회는 축복의 심장입니다. 교회는 심장이 온몸에 피를 공급하듯, 우리 삶에 하나님의 복을 공급해주는 곳입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형통을 주십니다.(시122:6) 교회는 모든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입니다.(엡1:23)
셀교회는 우리를 완전하게 치료해주는 곳입니다. 교회 안에서 상심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고치시고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시147:2-4) 우리의 마음, 삶,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셀교회는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가르쳐주는 곳입니다.(엡3:10) 하나님의 지혜를 배워서 점점 자라나고 생각과 마음이 올바르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바른 교회 생활을 통해 자라날 수 있습니다. 변함없는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매일성경통독큐티와 기도를 날마다 호흡하듯 해야 합니다. 봉사, 전도, 헌금은 감사로 해야 합니다. 교제는 성령 안에서 질서를 따라 해야 합니다.
셀교회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빛나는 신부입니다.(엡5:25) 예수님은 교회를 제일 사랑하십니다. 내가 주님의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분리되어 있는 존재는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롬11:18)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교회로 세우고 싶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으로 씻겨져서 주님의 빛나는 신부, 흠이 없는 교회로 세워가야 합니다.
그런데 셀교회가 다 다릅니다. 예수님이 머리되시고 부르심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그 몸이 됩니다. 주님의 말씀과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 합쳐진 것이 교회입니다.(엡2:20-22) 주님은 변함이 없지만 사람에 따라 교회가 달라집니다. 요한계시록 2장,3장에 7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를 보여줍니다. 7개의 교회 중 6개는 책망 받고 한 교회만 칭찬 받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하라는 것은 하는데 열의가 없이 억지로 하는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사람들 앞에 위축된 교회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모이면 세상 얘기하는 교회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리더가 타락한 교회입니다. 사데 교회는 생명의 능력이 없는 죽은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가 없는 교회입니다. 사람들끼리 좋아하는 인본주의 교회입니다. 유일하게 칭찬받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특징은 말씀을 지킨 것입니다.(계3:10~11)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시대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지막 때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셀교회 안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딤후4:1~8) 하나님의 복음대로 살고 천국 복음을 전하여 가르치는 교회가 이 시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바뀌면 교회는 바뀝니다. 함께 지어져 가야 합니다.(엡2:22) 어떻게 셀교회를 지어갈까요?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엡5:26~27) 그럴 때 주님께서 셀교회를 보호하시고 양육하십니다.(엡5:29)
셀리더는 겸손과 눈물로 주를 섬기면서 참으며 제대로 가르치고 말해야 합니다.(행20:19~21) 또한 함부로 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의 영혼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행20:28) 셀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셀리더를 잘 알고 가장 귀히 여기고 사랑하면서 셀원들 끼리 싸우지 말고 화목해야 합니다.(살전5:12~13) 셀리더의 말을 곧이 듣고 복종해야 합니다. 셀리더는 내 영혼을 지키는 사람입니다.(히13:17)
또한 구원의 여정을 제대로 걸어가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문제 해결, 병 고침, 위로, 사람들과의 교제와 같은 것이 아니라 거듭나고, 자라나고, 마침내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기 위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예배드리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을 위해 존재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엡 1:23)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구원을 위해 전도, 양육, 돌봄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인 교회가 이걸 위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교회 나오는 이유는 우리 마음의 변화를 위해서입니다. 변화되는 과정 가운데 가장 방해되는 것은 우리의 옛 자아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 짓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죄를 밝히 드러내야 하고(딤후 3:15-17) 그것을 혼자 성경 읽어서 하는 게 아니라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읽어야 하며(벧후 1:20-21) 그것을 감추고 회개하지 않고 고집부리지 않도록 믿는 자들의 모임에 들어와 서로의 모습을 실제로 노출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해주고(행 8:30-39) 말씀을 지켜 행하도록 해야 한다(행16:4)
교회에 사람 감독자를 두신 이유는 옛 자아는 사람 감독자를 통해 파쇄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혼자선 절대 자아가 파쇄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 때문입니다. 파쇄가 되어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마16:24) 예수님 믿는 삶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고후5:15) 명령하실 때 아멘이 되어야 합니다.(딤후2:2-4) 나의 모든 삶은 주를 위해 준비된 삶이기에 그렇게 되도록 내 자아가 파쇄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구원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구원은 결코 혼자 이루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함께해야 합니다. 함께하지 않으면 교회 올 이유가 없습니다. 스스로의 만족일 뿐입니다. 초대교회는 성전에서의 모임과 각 집에서의 모임이 함께 이루어졌습니다.(행2:46) 그러므로 성경적 예배는 공예배와 셀예배를 함께 드려야 합니다.
함께하여 서로 가르치며 권면해야 합니다.(골3:16) 그래서 큐티도 일기도 개인에게 적용하고 끝이 아니라 밴드에 올려서 함께, 같이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담임목사님을 통해 셀교회들에게 말씀을 증거하십니다. 한 명 한 명이 듣는 것이 아니라 셀교회가 듣고 말씀을 같이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셀예배로 말씀을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근데 한 번으론 안 되고 주중에 밴드로 날마다 모여야 합니다.(행2:46) 셀에 뿌리 내리지 못하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들은 그 당시는 다 가정 교회였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셀입니다.(몬1:2)
셀에게 선포하는 말씀을 듣고 나누는 게 예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 편하게 해주는 교회, 내게 맞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에서,당신이 죽고 변화되라고 하신 곳에서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교회입니다.(신12:12-14)
사도행전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연대와 거주의 한계를 정하셔서 사람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하셨다고 합니다.(행17:26-27) 제 삶을 돌아보면, 파주라는 땅에서 수학 선생님을 통해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된 것도, 그냥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말씀대로 이끄셨습니다. 교회는 다니다가 말다가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대학교 때 여러 전도자를 통해 다시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그때도 처음엔 그저 왔다 갔다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박히고, 믿어지고, 조금씩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지금까지 세상에서 배워 온 것과, 성경이 말하는 것이 정반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자기 자신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위해, 눈에 보이는 성공을 위해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사는 삶이 궁극적인 해답을 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세상이 말해주는 것들은 죽음이라는 마지막 벽 앞에서 아무 해결책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갈수록, 오히려 기독교에 더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아, 이게 진짜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죄와 즉음의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은 “끝”을 생각하지 않은 채, 이 땅에서 어떻게 잘 살 것인지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죽으면 끝이다”라는 말의 심각성을 모른채 살아왔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라고 고백합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수고와 성취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됩니다. 그런 인생이 무엇이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기독교는 여기에 대해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분명한 답을 줍니다.
또한 기독교는 내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롬3:10-12,23) 사회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악한 죄를 지은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늘 나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사53:6) 세상은 “주인의식”을 높게 평가하지만, 성경은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습니다. 그분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말입니다.(사43:21) 그런데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나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빗나간 인생, 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회복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새로운 존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지은 죄를 스스로 책임진다면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롬6:23)
죽음으로 책임져야 한다면, 다시 원점복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벧전2:24) 죄의 값을 완전히 치르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는 실제로 그 효력을 누리게 됩니다. 죄 용서와 새로운 삶, 그리고 부활의 소망이 그 사람의 것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이 땅에 오시고 실제로 못 박히시고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믿어졌습니다.(고전15:3-4)
이 믿어짐은 혼자 읽고 듣는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 안에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씀처럼,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니 믿어졌습니다.(롬10:17)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기 시작했고(살전2:13), 들은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셀로 들어간 것도 큰 은혜였습니다. 셀 안에서는 주일에 들은 말씀을 실제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 함께 나누었고, 말씀 앞에서 내 마음과 생각을 깊이 점검했습니다(히4:12). 단순히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나를 노출하는 자리였습니다(약5:16). 셀장님과 셀원들이 깊이 연결되면서 서로를 잘 알고, 필요할 때는 책망도 받고, 위로와 격려도 받았습니다.(히3:13)
셀장님은 성경 읽기를 놓치지 않도록 늘 권면해주셨고(수1:8), 나만 읽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읽음을 밴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 공동체와 함께하니 끝까지 읽을 힘이 생겼던 같습니다(전4:12).
말씀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적용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내 삶을 해석하고 이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시119:105, 잠3:5-6).
생각하지도 못했던 셀장으로의 부르심도 있었습니다. 셀장으로서 목사님께 양육받고 셀원들을 양육한다는 것은 결국 자아와 마주하는 일이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죄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혼자 신앙생활을 했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자아가 교회 안에 있었기에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 자아를 파쇄시키고 조금씩 변화시키셨습니다.(겔36:26)
이 모든 것은 교회 안에서만 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때 선포되는 말씀, 이끄시는 성령님,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형제자매, 함께 성경을 읽고 삶을 나누는 공동체, 나의 영혼을 지키는 리더. 신앙생활은 단순한 종교 활동이 아니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무 교회에서나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 교회, 구원받기 좋은 교회였기에 가능했습니다.
말씀을 따라 구원을 받고(엡2:8), 이루어가고(빌2:12), 얻게 될(마10:22) 여정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교회, 구원받기 좋은 교회 안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고전15:10)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나를 부르셨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고 계십니다.(롬8:30) 항상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겠습니다.